약초관찰여행 제 220부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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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5년 6월 9일 ; 10월 8일 목요일 <전북 고창농업기술센터> "한국토종약초의 효능과 활용 및 약초산행" 기념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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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0월 8일 <고창농업기술센터> 고창 운곡 람사르 습지 약초산행 기념사진

    뒷배경은 고창 고인돌 세계문화유산으로 고창 고인돌유적은 단일 구역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총 447기로
    가장 큰 군집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한 지역에 분포하며, 고인돌 축조과정을 알 수 있는
    채석장의 존재 등 동북아시아 고인돌 변천사를 규명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를 인정하여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등지기준 제 3항(독특하거나 아주 오래된 것)을 적용, 세계유산적 가치를 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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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 최대 무게 300톤 고인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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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全北) 고창(高敞)의 매산(梅山)마을 밭 가장자리에 굄돌(乭) 없이 땅 위에 덩그마니 앉혀 놓은 것 같은
    남방식 고인돌(南方式 Goindol)이 상석(上石) 높이 5m 가로 7m에 무게가 300톤(Ton)이 넘는 것으로
    추정(推定)되면서 동양 최대(東洋 最大)의 고인돌(Goindol)로 인정(認定)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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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톤이라고 기록한 입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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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카페, 박성일의 역사탐방>: "고창(高敞)과 인근(隣近)의 부안 일대(扶安 一帶)에는 모두 2,000여 기(餘 基)의 고인돌(Goindol)이 흩어져 있는데, 그 중(中)에서도 이곳에는 매산(梅山) 남(南)쪽 기슭을 따라 동서(東西) 약(若) 1.8㎞에 이르는 야산(野山) 기슭의 면적(面積) 572,200㎡ 내(內)에 무려 447기(基)의 고인돌(Goindol) 떼가 모여 있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 군집(Goindol 群集)을 이루고 있는 지역(地域)인데, 그리하여 ‘세계(世界)에서 고인돌(Goindol)이 가장 밀집(密集)된 지역(地域)’으로 꼽혀 ‘세계문화유산(The World Heritage)’으로 등록(登錄)되자 고창군(高敞郡)에서는 이곳을 ‘고인돌 공원(Goindol 公園)’으로 조성(造成)하였음.

    1990년(年) 마한백제문화연구소(馬韓百濟文化硏究所)의 지표조사(地表調査) 결과(結果), 북방식(北方式) 2기(基)․개석식(蓋石式) 44기(基)․남방식(南方式) 247기(基)․기타 불명(其他 不明) 149기(基)로 총(總) 442기(基)가 확인(確認)되었는데, 크기는 길이 1m 미만(未滿)에서 최대(最大) 5.8m에 이르는 가운데 3m 미만(未滿) 80%․3m 이상(以上) 20%․4m 이상(以上) 21기(基)․5m 이상(以上) 6기(基)로 밝혀졌음.

    이곳에는 바둑판(板) 모양(模樣)의 남방식(南方式)․탁자 모양(卓子 模樣)의 북방식(北方式)․천장돌(天障乭)만 있는 개석식(蓋石式) 등 우리나라에서 조사(調査)되는 고인돌(Goindol)의 각종 형식(各種 形式)을 모두 갖추고 있고, 상석(上石)의 크기 또한 소형 석곽(小型 石槨)인 개석(蓋石)부터 거석(巨石)까지 있어 10톤(Ton) 미만(未滿)에서 300톤(Ton)에 이르는 다양(多樣)한 크기의 고인돌(Goindol)이 분포(分包)하고 있어 고인돌(Goindol)의 발생(發生)과 성격(性格)을 아는데 매우 중요(重要)하며 동북아시아(東北 Asia)의 고인돌 변천사(Goindol 變遷史)에도 중요(重要)한 자료(資料)가 되고 있는데, 특히 상갑리 일대(上甲里 一帶) 고인돌(Goindol)은 북방식 고인돌(北方式 Goindol)의 남(南)쪽 한계선(限界線)으로 학술적 가치(學術的 價値)가 높은 유적(遺蹟)임.

    이곳에는 항아리만한 작은 것에서부터 어떤 것은 초가(草家)집만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多樣)한 크기의 고인돌(Goindol)이 일련번호(一連番號)를 달고 곳곳에 산재(散在)해 있는데, 풍부(豊富)한 농업 생산력(農業 生産力)을 보장(保障)하는 비옥(肥沃)한 자연조건(自然條件)과 온화(溫和)한 기후조건(氣候條件)을 찾아 이 지역(地域)에 터를 잡고 살던 기원전(紀元前) 400∼500년(年) 무렵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사람들의 집단(集團) 무덤으로서 이 지역(地域)을 지배(支配)했던 족장(族長)들의 가족 묘역(家族 墓域)이었을 것으로 추정(推定)되고 있음.

    ‘고인돌 공원(Goindol 公園)’은 모두 6개(個) 코스(Course)로 나뉘어 있는데, 제1코스(第一 Course)는 죽림리(竹林里) 야산(野山)에 자리잡고 있는 53기(基)의 고인돌군(Goindol 群)․제2코스(第二 Course)는 죽림리(竹林里) 매산(梅山)마을의 41기(基)․제3코스(第三 Course)는 죽림리(竹林里)에 몰려 있는 128기(基)의 고인돌군(Goindol 群)으로 이 고인돌 공원(Goindol 公園)의 절정(絶頂)을 이루는 곳이며, 죽림리(竹林里) 성틀봉(峰) 아래에 자리잡은 15곳의 고인돌(Goindol) 상석 채굴지(上石 採掘地)인 제4코스(第四 Course)․220기(基)의 고인돌(Goindol)이 몰려 있는 아산면(雅山面) 상갑리(上甲里)와 봉덕리(鳳德里)의 제5코스(第五 Course)․마지막으로 탁자형(卓子形)인 북방식 고인돌(北方式 Goindol)을 비롯한 5기(基)의 고인돌(Goindol)이 있는 도산리(道山里)의 제6코스(第六 Course) 등임.

    특히 제6코스(第六 Course)에 속(屬)한 도산리(道山里)의 한 민가(民家) 뒤뜰 장독대(臺) 한 켠에 서 있는, 똑떨어지게 잘 생긴 전형적(典型的)인 ‘북방식 고인돌(北方式 Goindol)’은 ‘전북기념물 제49호(全北記念物 第四十九號)’로 지정(指定)된 ‘도산리 고인돌(道山里 Goindol)’로 북방식(北方式) 가운데서는 가장 남(南)쪽에 있는 것이며, 그 모양(模樣)이 마치 탁자(卓子)나 상(床)과 같아서 예전에는 하늘에 제사(祭祀)지내던 단(壇)이라 여긴 적도 있고, 마을 사람들이 정화수(井華水)를 바치는 곳이 되기도 했는데, 원래(原來) 4면(面)을 판석(板石)을 세워 막고 그 위에 뚜껑돌(乭)을 얹은 것이지만, 양(兩)쪽 마구리 벽(壁)은 없어져 2매(枚)의 판석(板石) 위에 뚜껑돌(乭)이 얹힌 모양(模樣)으로 뚜껑돌(乭)의 길이는 3.5m․폭(幅)은 3.1m에 두께는 30~38㎝ 정도(程度) 되며, 남아 있는 두 개(個)의 받침돌(乭)은 높이가 1.8m임.

    한편, 한국 최대(韓國 最大)로 추정(推定)되는 고인돌(Goindol)은 지금까지는 전남(全南) 화순군(和順郡) 춘양면(春陽面) 대신리(大薪里)의 남방식 고인돌(南方式 Goindol : 사적 제410호)로 길이 7.3m․폭(幅) 5m․두께 4m에 추정(推定) 무게만 무려 283톤(Ton)의 초대형 거석(超大型 巨石)이었으나, 최근(最近) 들어 전북(全北) 고창(高敞)의 매산(梅山)마을 밭 가장자리에 굄돌(乭) 없이 땅 위에 덩그마니 앉혀 놓은 것 같은 남방식 고인돌(南方式 Goindol)이 상석(上石) 높이 5m․가로 7m에 무게가 300톤(Ton)이 넘는 것으로 추정(推定)되면서 동양 최대(東洋 最大)의 고인돌(Goindol)로 인정(認定)받았음.

[출처] 고창 고인돌 유적 - 고창지석묘군(高敞支石墓群 : 사적 제391호) : 전북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도산리 및 아산면 상갑리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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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유적지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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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습지로 가는 고개 방향의 고인돌 군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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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유적지의 안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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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습지 노랑어리연꽃 군락지에서 기념촬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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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습지 노랑어리연꽃 군락지에서 기념촬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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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종을 친 뒤 기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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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람사르습지 노랑어리연꽃군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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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람사르습지 노랑어리연꽃군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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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람사르습지 노랑어리연꽃군락-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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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람사르습지 노랑어리연꽃군락-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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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람사르습지 노랑어리연꽃군락-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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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람사르습지 노랑어리연꽃군락-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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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람사르습지 노랑어리연꽃군락-7

고인돌 유적지 및 운곡람사르습지 탐방에 참여하신 모든분 수고하셨습니다.

이날 습지에 자생하는 매우 다양한 풀과 나무들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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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농업기술센터> 2015년 7월 16일 목요일 오전 10시~12시 - 오후 1시~3시: 4시간 <무병장수와 야생약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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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실물교수법으로 제공된 약초는 아래와 같다.

1, 석창포 2, 감태나무 3, 개다래 4, 하수오 5, 돌외(행복초)

이날 공부한 내용은 홈 1번 <천연물질대사전> <사진순서 및 글순서> 가.나.다.순에서 상세한 자료를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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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일정에 매우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늦은 저녁 약초강의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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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하신 모든분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한국토종야생산야초> 홈페이지를 자주 방문하여

풀과 나무에 대한 지식을 끊임없이 섭취하시고 무병장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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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 농업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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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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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인돌 무리>

전북 고창은 인근 화순과 경기도 강화와 더불어 이름난 고인돌 분포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만 이름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인돌 산지로 이곳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옛날 청동기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 보자.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지배자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농경을 시작하고 보다 정교한 도구를 사용하면서 집단 내 권력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그 산물이 바로 고인돌이라는 것이다. 고창의 고인돌은 매산 기슭을 따라 곳곳에 놓여 있으며 그 개수는 500여 기에 이른다. 이곳 고인돌의 모양은 남부 지방에서 많이 발견되는 형태로 굄돌이 땅속에 들어가 있는, 즉 지하에 돌방이 만들어진 바둑판식 또는 개석식 형태가 많다. 하지만 도산리에는 북부지방의 대표적인 형태인 탁자형 고인돌도 볼 수 있다.

고인돌 사이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하나하나 살피면서 관람을 하는데 그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라 누구의 무덤일까, 누가 만들었을까 생각하면서 돌아보면 재미있다. 길 건너편에는 최근 고인돌박물관이 문을 열어 고창의 고인돌과 선사문화에 관한 이해를 도와준다. 전 세계 고인돌의 70% 이상이 한반도에 모여 있어 우리나라가 가진 세계적인 유산이라 할 수 있는 고인돌, 특히 고창의 고인돌 무리는 학술적으로 단연 의미 있는 곳이니 한 번쯤 답사를 해볼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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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의 유명한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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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명창 신재효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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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신재효 고택(高敞 申在孝 古宅)>

개설: 1850년경 동리 신재효(申在孝)[1812~1884]가 거주했던 초가집으로 1979년 1월 23일 중요민속자료 제39호로 지정되었다. 신재효는 원래 소리꾼이 아니라 재산이 넉넉한 중인 출신이었다. 신재효는 스무 살 무렵 고창 관아의 이방이었는데, 당시 광대라 불리던 소리꾼을 동원해 관청의 행사를 치르면서 판소리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신재효는 선대에서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소리꾼들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했으며 집 안에 노래청을 두어 제자를 길렀다. 신재효는 오랫동안 구전되던 판소리 여섯 마당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으며, 동편제와 서편제의 장점을 취해 판소리 이론을 정립했다. 1979년 1월 23일에 중요민속자료 제39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고창읍성 입구에 있으며, 대문은 읍성 쪽으로 나 있고, 사립문을 열고 나서면 고창판소리박물관이 나온다.

변천: 신재효가 여생을 마친 1884년(고종 21)까지 기거한 동리정사(桐里精舎)는 일반적으로 1850년(철종 1), 신재효 생존 당시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건물 상량문에 적힌 ‘광무3년 기해 3월 26일 계유인시(光武3年 己亥 3月 26日 癸酉 寅時)’라는 문기에 의하면, 실제 건립 연대는 1899년(고종 36)이다.

아마도 신재효가 서재로 사용하였던 건물이 퇴락하여 못쓰게 되자 그가 죽은 뒤 1899년에 신재효 생존 당시와 같은 규모로 다시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에는 안채를 포함한 여러 건물들이 있었겠지만 현재는 초가만 남아 있다.

형태: 정면 6칸, 측면 2칸의 일자형 주택으로 북향으로 있다. 평면 구성은 건물의 왼쪽으로부터 부엌 1칸, 온돌방 2칸, 대청 1칸, 2칸통의 온돌방으로 되어 있고, 부엌을 제외한 전면의 5칸은 우물마루로 꾸민 반 칸 너비의 퇴로 연결된다. 구조는 낮은 기단 위에 막돌 덤벙주초를 놓았고, 앞쪽의 기둥은 모두 맷돌 모양의 주초와 두리기둥이며,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세운 민도리 3량가(三樑架)이다.

고창 신재효 고택은 부엌 벽을 심벽[心壁: 흙만 가지고 쌓아올린 토언제(土堰堤) 등에서 물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진흙 따위로 만들어 그 심에 넣은 벽체]으로 처리하였고, 부엌과 온돌방 사이에 비교적 넓은 쌍여닫이 출입문을 만든 점과 대청 양쪽 방으로 연결하는 문을 달지 않은 점이 특이하다.

고창 신재효 고택 뒤편에는 원래 연못이 있었으나 연못은 메워지고 그 자리에 고창경찰서가 들어서 있었는데, 고창경찰서는 동리박물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전하였고 지금은 초가만 남아 있다. 건물 왼쪽 뒤편에는 우물이 남아 있다. 1979년에 보수, 정화하고, 1986년에 연못과 담장의 석축을 보수하였다.

현황: 고창판소리박물관, 군립미술관 등 현대식 건축들 속에 소박한 초가집이 한 채 덩그러니 놓여 있다. 경내가 잘 정비되어 있고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아 실제로 사람이 살았던 집이라기보다는 영화 세트장 같다. 매표소가 있지만 관람료를 받지는 않는다.

의의와 평가: 고창 신재효 고택은 우리나라 판소리계의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신재효가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서, 그 모습을 인형으로 재현하고 있다. 명인의 옛 집으로서 가치 있는 자료이며, 조선 후기 전라도 지방의 대표적인 민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1, 『고창지방문화재지표조사보고서』(전북대학교 박물관, 1984)
2, 『(한국의) 전통가옥』3-고창 신재효 고택(문화재청, 2004)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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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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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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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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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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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효 생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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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우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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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좌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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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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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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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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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4

<전북 고창 죽림리 선돌(竹林里 선돌)>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에서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선돌.

죽림리 선돌은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전형적인 수구막이 기능을 하는 마을 입석[선돌]이다. 죽림리 당산제는 수구막이형 마을 입석과 암줄과 숫줄을 할머니 당산과 할아버지 당산에 감아 놓는 방식으로 원형성을 가진 당산 입석과 줄다리기를 보여 주는 매우 독특한 제의로 명성이 높다. 죽림리 당산 입석 2기가 마을 입구 길 양옆에 세워져 있는 것은 수구막이 선돌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죽림리는 풍수지리의 구도가 약하지만, 마을 입구에 두 기의 입석을 조성하여 마을 풍수의 구도를 상징적으로 갖추어 놓았다.

할아버지 당산과 할머니 당산은 마을 입구 길 가운데쯤에 서로 마주 보고 세워져 있다.

할아버지 당산 입석은 높이 110㎝, 넓이 65㎝, 두께 28㎝의 방형 입석이다. 할머니 당산 입석은 높이 92㎝, 넓이 52㎝, 두께 26㎝이다.

현재 고창읍 죽림리 당산제는 농촌 인력의 고령화로 줄을 감아 놓기는 하지만, 줄다리기를 하지는 않는다. 아침에 줄을 만들어 저녁때에 줄을 당산에 감아 놓는 것으로 당산제를 마치는 방식이다. 죽림리 당산제는 10여 년 전부터 줄다리기가 중단되었지만 줄다리기를 하지 않더라도 줄을 감아 놓아야 한다는 마을 어른들의 요청에 따라 줄 감기만 하고 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마을에서 생기복덕을 가려 선정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줄을 만드는데, 마을에 출산이나 초상이 발생하면 2월 초하루로 미룬다. 줄이 다 만들어지면 간단한 제물을 차려서 줄을 감은 뒤에 당산제를 지낸다. 제사상은 마을 이장과 화주가 차리는데, 제물에는 시루떡, 돼지머리, 삼실과, 삼채 등이 쓰인다.

할아버지 당산과 할머니 당산은 마을 전면 양쪽에 위치하였으나, 10여 년 전에 할아버지 당산을 할머니 당산 옆으로 옮겨 수구막이형 입석으로 조성해 놓았다. 죽림리에서는 정월 대보름날에 ‘고’가 달린 줄을 제작하여 줄다리기를 한 다음에 암줄은 할머니 당산에 숫줄은 할아버지 당산에 감아 놓았다. 현재는 이런 관행이 단절되었는데, 농촌의 이농 현상으로 농촌 인구가 감소하고 주민의 고령화 현상으로 줄다리기를 할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매년 줄을 만들어 감아 놓는 일은 지속하고 있다.

[참고문헌]

• 인터뷰(고창읍 죽림리 주민 임화섭, 남, 66세, 2009)

55년만에 필자가 잠시 약초 강의로 인하여 방문한 고창읍의 유적지를 둘러본 사진 중 일부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아름다운 고창읍에 대해서 좀 더 소개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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